1984년 국내 10대뉴스

- 학생들 민정당사 농성
- 학원민주화요구데모로 불붙기 시작한 학원사태는 1984년 11월 14일 급기야 민정당사점거사태로 이어져 정치문제화 되기에 이르렀다. 연초 학원자율화조치 이후 대학가는 시위, 경찰진입, 구속 등으로 진통을 거듭했다.

- 2,3차 해금과 신당
- 1984년 2월 25일 2차 해금, 11월 30일의 3차 해금으로 15명만 남기고 총 2백86명이 풀려났다. 3차해금 20일만에 발기인대회를 가진 신한민주당은 민한당 소속의원들의 탈당과 함께 정국의 새 변수로 등장했다.

- 한강 대홍수 189명 사망
- 1984년 9월 1일 새벽부터 중부내륙을 기습한 폭우는 60년전 대홍수를 능가했다. 사망 1백89명,부상 46명, 재산피해만도 1천3백여억원. 서울의 수재민들은 `인재`라고 주장, 국가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내기도 했다.

- 한국-중국 스포츠 교류
- 한국에 가려있던 죽의 장막이 스포츠교류로 열렸다. 한국 테니스선수단이 2월 중국에 첫 입국하여 데이비스컵 예선전을 가진 뒤, 중국농구팀과 수영팀이 서울에 들어왔고, 10월엔 상해농구대회에 한국팀이 참가했다.

- 판문점 소련인 망명
- 소련인 마투조크씨가 1984년 11월 23일 판문점 관광중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쪽으로 탈출했다. 북한경비병들의 추격으로 발생한 쌍방의 총격전으로 국군 1명이 전사하고 북괴병 2명이 사망했다.

- 정래혁씨의 축재 파급
- 민정당 대표위원 정래혁씨의 축재문제가 문형태씨측의 투서로 사회문제화되어 정씨가 공직을 사퇴하기에 이르렀다. 이 사건은 8월 11일 정씨가 1백70억원의 재산중 54억원을 국가에 헌납함으로써 1개월 17일만에 간신히 수습됐다.

- 수해물자와 남북회담
- 1984년 9월 29일 북측이 보낸 수해물자를 인수한 것을 계기로 11월 15일 제 1차 남북한 경제회담이 열렸다. 이어 11월 20일에는 7년만에 남북측 예비회담이 다시 열려 제 8차 본회담을 1월중 서울에서 갖기로 했다.

- 교황 한국 103위 시성
- 한국천주교 2백주년을 맞아 로마교황이 처음 방한(5월 3일 ~ 7일), 한국순교복자 1백3위를 시성했다.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회뿐 아니라 화해를 강조, 사랑의 실천 및 평화의 사도로서 큰 족적을 남겼다.

- LA올림픽 10위 개가
- 제 23회 LA올림픽에서 금6,은6,동7개등 19개의 메달을 획득하여 한국은 출전 1백40개국중 10위를 차지하는 사상최고의 성과를 거뒀다. 이는 과거 8차례 올림픽출전에서 거둔 통산성적보다 많은 것이다.

- 전두환 대통령 일본 방문
- 전두환 대통령은 1984년 9월 6일부터 8일까지 2박 3일간 우리나라국가 원수로는 처음으로 일본을 공식방문했다. 히로히또 일황은 공식만찬석상에서 양국간의 과거에 대해 `유감`이라는 표현을 써 사과발언을 했다.
1984년 해외 10대뉴스

- LA올림픽 동구권 불참
- 1984년 7월 28일 열렸던 제 23회 LA올림픽에 동구권이 선수신변에 대한 위협을 이유로 불참, 올림픽이 정치문제로 또다시 상처를 입었다. 그러나 LA올림픽은 어느 대회 못지않게 풍성한 기록을 많이 남겼다.

- 미국 고장위성 회수
- 미국 유인우주선 디스커버리호는 1984년 11월 12일 고장난 인공위성 팔라파B2를 회수, 수리하는데 최초로 성공했다. 이로써 우주에서의 위성수리시대가 열렸으며, 우주시대의 꿈도 한발짝 다가서게 됐다.

- 교황청 해방신학 논쟁
- 해방신학에 대한 교황청의 조문위가 1984년 9월 7일 열렸다. 해방신학의 정치성을 둘러싼 해방신학자 보프신부와 교황청의 논쟁은 `20세기판 종교재판`으로 불릴 정도로 전세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.

- 중국 경제개혁안 채택
- 중국은 1984년 10월 20일 열린 12기 3중전운에서 자본주의원리를 도입한 경제개혁안을 채택했다. 당 기관지인 인민일보는 12월 7일과 21일 두차례에 걸쳐 마르크스주의가 오늘날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.

- 영국, 중국 홍콩 협정
- 대처영국수상과 소자양 중국수상은 1984년 12월 19일 99년간에 걸친 영국의 홍콩조차에 종지부를 찍는 홍콩반환협정에 서명했다. 이에따라 오는 97년부터 중공의 `1국 2체제` 실험이 시작된다.

- 간디 인도 수상 암살
- 인디라 간디 인도 수상이 1984년 10월 31일 시크교도 경호원 2명에 의해 피격, 사망했다. 간디 암살 후 힌두교도들과 시크교도들간에는 대규모로 유혈학살극이 벌어져 모두 5백여명이 사망했다.

- 소련 체르넨코체제 등장
- 소련공산당서기장 유리 안드로포프가 1984년 2월 9일 병사하자 콘스탄틴 체르넨코가 4일만에 그 뒤를 이어 집권했다. 체르넨코는 과도기적 인물로 비치기도 했으나 현재 통치력을 장악한 것으로 보인다.

- 아프리카 기아
- 금세기 최고의 가뭄으로 아프리카 5억의 인구중 2억이 기아에 허덕이고 있으며, 매일 수백명이 죽어가고 있다. 가장 심각한 이디오피아에서는 50여만명이 사망, 6백여만명이 아사직전에 놓여있다.

- 레이건 미국 대통령 재선
- 대소강경자세와 군비강화를 주축으로 강력한 미국의 재건을 추구해온 레이건 대통령은 1984년 11월 6일 선거에서 먼데일 민주당 대통령후보에 낙승, 재선되었다. 재정적자와 군축협상타결이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.

- 인도 가스누출 대참사
- 인도중부 보팔시에 있는 미국 다국적기업 유니언 카바이드사 공장에서 1984년 12월 3일 유독가스가 누출된 사고가 발생, 2천5백명이 사망했다. 이 사고는 다국적기업의 공해산업수출의 윤리문제를 부각시켰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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